듀프(Dupe), 그 감정의 소비가 앗아가는 것들

  • 작성일 : 2025-05-29 10:52:08

 

 

언젠가 SNS 피드 속 한 장의 사진이 내 눈을 멈추게 했다.

익숙했다. 몇 달 전 런웨이에서 본 디자이너 브랜드의 재킷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가격은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댓글에는 ‘000(브랜드)맛 제대로다’, ‘이 가격 실화냐’는 반응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그때 문득, 아주 사소하지만 묵직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건 정말 괜찮은 소비일까?

 

 


 

 

 

 

듀프(Dupe)라는 단어는 이제 하나의 소비문화가 되었다.

명품 브랜드, 혹은 고가의 디자이너 제품을 ‘닮은 듯 다른’ 저가 제품들. 브랜드 로고는 빠져 있고, 소재나 마감은 간소화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디자인과 감성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 소비는 ‘가성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단지 가격만이 아니라 창작의 권리와 생존까지 흥정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많은 SPA 브랜드들이 디자이너 브랜드의 디자인을 ‘참고’ 수준이 아니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상품화하고 있다.

수개월에 걸쳐 완성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는, 몇 주 만에 대량 생산되어 전 매장에 진열된다.

시장에선 그 빠름을 칭찬하고, 소비자는 ‘그럴싸한 비슷함’을 고마워한다.

그러나 그 유사함이 반복될수록 디자이너 브랜드의 생존은 위태로워진다. 창작자들은 하나의 실루엣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의 수정을 거치고, 소재부터 봉제까지 수많은 손길이 오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벌이, 로고 하나 빠졌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대체되는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종종 소비를 통해 ‘감성’을 산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삶을 사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삶이 창작자의 것이라면, 우리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어떤 책임을 가진 존재다.

듀프 소비는 단지 ‘싼 것을 산다’는 문제가 아니다. 디자인의 의미를 지우는 일, 브랜드 철학을 모른 척하는 일, 창작자를 침묵시키는 일일 수도 있다.

 

 


 

 

                                           해외에서 바이럴되는 아마존의 듀프아이템.

 

 

물론 우리 모두는 합리적인 가격에 멋진 물건을 사고 싶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이따금 멈춰서 생각해본다.

이 가격의 이 옷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누군가의 고유한 언어를, 너무 쉽게 흉내 낸 건 아닐까?

내가 지불한 건 가격뿐이지만, 잃어버린 건 브랜드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가볍게 들고 나온 그 가방 하나가, 어떤 디자이너에게는 모든 것이었을 수 있다.

좋은 소비란 단순히 저렴하거나 예쁜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와 무게를 함께 사는 일이라고 믿는다.

당신의 소비가 브랜드를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브랜드의 이름 너머에는 언제나, 묵묵히 꿈을 짓는 한 사람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