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맛, 르메르맛, 샤넬깔, 디올스트, 꼼데스트 .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맛, 깔, st'만큼 현대 소비자들의 니즈를 잘 반영하는 단어가 없다. 합리적인 비용 내에서 그 이상의 가치와 분위기를 갖고 싶은 마음. 이러한 현대 소비자의 욕망에 맞추어 등장한 것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그이름, 듀프(DUPE)다. 특정 제품과 유사한 이미지를 지닌 가성비 대체품을 일컫는 이 말은, 이제 현대 소비자들한테 '현명한 소비' '가치 소비' ' 가성비' 등등 나름의 합리성을 부여해주는 소비 문화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듀프 열풍이 정말 현명한 소비의 시대를 열었을까?
진짜는 호구, 가짜는 유행? : 언제부터 가품이 트렌드가 되었는가
사실 짝퉁의 역사는 보기보다 오래되었다. 2000년대부터 동대문 가게들에는 어딘가 비뚤어진 물음표의 게스 티셔츠들과, 미묘한 중국산 택이 붙은 디키즈 바지들이 가득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동묘와 빈티지샵에 넘쳐나는 출처 모를 아디다스 져지들과 칼하트 바지들로 그 계보가 이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빈티지 열풍이 불기 전까지는 구매 출처를 가리거나 혹은 얼버무리기 경우가 잦았다. 가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마저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할까? 틱톡 해쉬태그 # knockoffdesigner을 들어가 보면, 놀라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수십 명의 인플루언서들이 당당하게 짝퉁 하울을 올리며 가품 소비를 권장한다. 2024년 붐을 일으킨 'Canal Street Haul'은 단속이 오면 튀어야 하는 보자기형 도떼기시장 제품들을 리뷰하고 심지어 정보를 나눠주는 장이 되며 거대한 가품 마켓을 생성했다. 의뭉스러운 로고를 숨기기 급급했던 과거와 달리 이들은 가품 소비야말로 현명한 소비라고 말한다.
명품 가방 대부분은 중국 공장에서 결국 30만원도 안되는 원가로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가품은 진짜 21세기 명품의 가격을 그대로 반영하기에 매우 합리적인 소비죠.
왜 가방에 200만원이나 쓰죠? 15만원이면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
Canal street 제품들은 전부 실제 브랜드들이 버릴 리퍼브 제품들이에요. 결국 진짜나 다름이 없죠.
영상에 등장한 이 멘트들을 보면 그들은 진정으로 가품 소비=현명 소비라는 믿음에 횝싸여있다. 그리고 실제 이 문장을 들은 사람 중 몇몇은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특히나 의류 브랜드에 대해 불만이 많아지는 현재를 생각하면, 정말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품 소비가 왜 문제가 될까?
가격은 가짜, 원하는 건 진짜 : 네 안의 결핍을 인정해야 해.
사람들이 가품을 사는 이유가 '합리성'인 것은 맞다. 다만, 그들이 결국 구매하고자 하는 것은 가짜 제품 그 자체가 아닌 가짜의 가격에 진짜의 이미지이다. 정말 질 좋은 제품,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원했다면 굳이 가품을 살 이유는 없다. 바깥에는 이미 그 가격대에 좋은 품질인 제품들이 깔렸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가품의 가격을 주고서 '진품의 가치'를 구매하는 것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틱톡에서는 찰나에 가품이란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떠들지라도, 결국 그들의 인스타그램과 피드에는 입을 싹 닫은 채 모든 제품을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가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침묵이 드러나는 것은 결국 그들의 구매가 말하는 합리란 '진짜처럼 보이고 싶은' 도둑놈 심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가품이 나쁜 이유는 명확하다. 그렇다면 듀프(DUPE)는 다른 걸까? ㅇㅇ맛, ㅇㅇ깔 이런 단어가 벌써 시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듀프를 사는 이유가 빈칸에 들어가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이게 과연 가품 소비에 깔린 기저와 다를 게 무엇인가. 이 불편한 진실을 몇 년간 외면해 왔기에 일어난 결과가 바로 이 '가품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짝퉁이 더 이상 부끄럽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센스 있고, 가치 있는 소비로 둔갑해버린 우스운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듀프 안전지대 : 우리는 왜 듀프를 눈감아주는가
사실 듀프는 패션의 하향 전파 모델에 의하면 당연히 탄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하이 패션에서 시작된 트렌드들은 원래 디자이너 브랜드들로, 이는 SPA 상표로, 여기에서 보세 같은 공장으로, 마지막은 이름도 없는 가품으로. 이런 하위 전파는 응당 패션 업계에서 순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현재의 듀프는 단순히 '굴레'라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제 듀프는 단순한 트렌드나 제품의 카피가 아닌 '이미지' 자체를 집어삼키려는 욕망덩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로 2025 트렌드에 의한 브랜드들의 특징을 살펴보자. 2025 여성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일본식 테일러링 패션일 것이다. 플리츠 스커트, 곡선이 많은 그레이 셋업, 체크와 프릴 등등. 꼼데걸이 대표하는, 이른바 '일본 소녀 패션'은 국내에서도 큰 유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보아도 '꼼데가르송 걸'이구나 하는 제품들이 모든 브랜드에서 쏟아진다는 것이다. 단순한 소녀다움, 테일러링이라는 키워드가 아닌 '꼼데걸'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가지는 이미지를 복제해서 찍어내는 브랜드들이 가득한 것이다. 이와 엮여 SNS에서 특정 브랜드의 셋업과 꼼데가르송 걸의 원조 셋업을 구분하지 못해 원조를 짝퉁이라 일컬어지는 사고까지도 발생했다.
파괴왕 듀프 : 듀프가 불러오는 패션종말론
이러한 듀프 열풍의 화살을 우리는 종종 브랜드한테 돌리곤 한다. 품질에 비해 비싼 가격, 대체하기 너무 쉬워진 중국산 패스트 패션의 부상. 결국 브랜드들이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탓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어쩌면 우리가 너무 쉽게 듀프를 기준 삼아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듀프와 패스트 패션이 '기이한 가격'을 형성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제 듀프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옷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닌 옷이 가치를 가지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디자인이라는 디자이너의 노력과 가치를 아무런 노력 없이 강탈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IP침해에 대한 무감각성은 브랜드의 창작 동력을 약화하고 산업 자체를 위축시킨다. 괜찮은 브랜드가 요즘 없어. 방관자의 입장에서 건네는 이 말이 브랜드들에는 얼마나 아픈 말인지 모를 것이다. 카피된 제품의 가격을 기준 삼아 판단하는 이들 덕에 옷은 후려치게 되기 일쑤이다. 결국 창작의 값어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작이 계속될 수 있을까?
소비도 마찬가지이다. 병행수입, 리셀, 해외직구 등 합법과 불법 사이의 회색지대, 이른바 그레이존이 듀프 제품의 유통 경로로 악용된다. 소비자는 “공식 정품”인지, “기획 상품”인지, “비공식 루트”인지 구별하지 못한 채 제품을 접하게 되고, 브랜드 역시 이 같은 유통 구조로 인해 이미지 훼손, 가격 왜곡, 시장 혼란을 겪는다.
즉, 듀프가 파괴하고 있는 건 단순히 양심뿐만이 아니다. 무분별한 듀프 허용이 천천히 패션의 종말을 불러오고 있다.
패션도 이제 재산권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사이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패션의 지식재산권(IP) 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이 면죄부는 아니다. 듀프가 존재하는 것과, 듀프를 무한정 허용해 주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괏값을 가품 유행이라는 트렌드로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지금에야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나 명품 정도지만, 패션은 언제나 하위로 전파된다. 나중에는 작은 브랜드마저 카피 당하고, 듀프라는 이름에 포장될 날이 멀지 않았다. 실은, 조금만 찾아봐도 이미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이기적인 합리가 아닌 이치로로서의 합리를 생각하며 소비해야 한다.
하지만 전공자들도 헷갈리는 마당에 일반인들이 브랜드의 특징을 알아보는 것, 듀프와 진짜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패션 IP 보호의 기준을 제시하고,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안전망을 제공하는 기관, 패션IP센터이다.
패션 IP센터와 패션 지식재산권(IP) 보호 캠페인 서포터즈
2024년 6월 4일 개소한 패션 IP 센터는 기준이 모호한 패션 IP를 명확히 정립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등장한 업체이다. 국내외 지재권 분쟁 예방, 대응, 침해조사, 위조 상품 식별 인증 지원, 해외 진출 관련 컨설팅 지원, 위조 상품 감정, 정품 시가 작성, 등록원부 지원 등의 브랜드별 맞춤형 IP 교육 및 법적 자문이나 대응이 이루어진다. 외에도 패션 산업의 공정하고 건강한 분위기를 위해 창작자 보조 외에도 소비자들을 위한 윤리적 정보 제공 및 다양한 콘텐츠 및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 일환 중 하나인 패션 지식재산권(IP) 서포터즈는, IP 문제를 본 기사처럼 접근성 좋게 가시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 1기에서도 듀프의 개념, 듀프 컬처가 가져오는 영향력 등을 다룬 다양한 기사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한테도 IP 문제를 실생활과 연결 지어 제시하였다. 이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패션 지식재산권(IP) 이슈가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상기해 준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브랜드나 디자이너만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더 나은 소비와 고민해야 할 시대에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브랜드나 디자이너만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더 나은 소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고, 패션 IP 센터는 그 길을 보조해 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중이다.
이제 진짜를 지키는 소비자가 되어야 할
듀프 열풍이 유행되었고, 가품 소비가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앞으로 계속 물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지향해야 하는 '현명한 소비'가 맞는지. 우리가 입고, 들고, 사용하는 모든 제품- 옷 한 벌부터 액세서리 하나까지-는 모두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누군가의 생각과 감각, 노동과 시간, 일상과 일생이 담긴 하나의 경로이다. 그 길을 마음대로 짓밟고 다니는 것은 소비자로서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하지 못할 짓이다. 결국 듀프를 통한 암묵적인 방관은, 패션을 창작이 아닌 모방으로 고이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듀프 시대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진짜를 아는 사람이 될 것인가, 진짜인 척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소비는 결국 하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한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지속적인 방관을 택할지, 아니면 듀프란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노력을 해볼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듀프’는 유행이지만, ‘진짜’는 태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한 물건을 구매할 때 잠깐의 고민을 하거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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