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기술인가, 70년의 감각인가

  • 작성일 : 2026-03-26 10:18:05

“대륙법의 특허 만능주의를 넘어
산업 주권 가져올 ‘저작권’ 경영
AI 시대 인간의 창작주권을 지켜낼
70년의 견고한 미래 지향적 성벽”

 

대한민국 산업계는 오랫동안 대륙법 체계 아래 성장해 왔다. 이 체계의 핵심은 엄격한 등록과 눈에 보이는 실체다. 우리는 혁신의 증표를 늘 국가 기관의 설정등록을 거쳐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산업재산권, 즉 특허나 디자인권에서만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글로벌 패션 시장의 문법은 더 이상 이 오래된 행정적 관습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미지=제미나이(나노바나나) 생성

이미지=제미나이(나노바나나) 생성

 

우선 우리가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이라 부르는 ‘가계도’를 리더의 시각에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식재산권은 크게 특허와 디자인권을 포함하는 산업재산권과,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보호하는 저작권으로 나뉜다. 특허는 발명의 기능적 작동 원리를 보호하고, 디자인권은 물품의 시각적 형태와 심미성을 보호한다. 대륙법적 사고에 익숙한 리더들은 이처럼 등록이 필수적인 산업재산권에만 매몰되어 저작권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특허와 디자인권은 등록과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보호 기간이 20년에 불과하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다. 

반면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하는 무방식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우위는 그 보호 기간에 있다. 저자권은 창작자가 살아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무려 70년(법인 등 업무상 저작물은 공표 후 70년)이라는 기간 동안 독점적 지위를 보장한다. 대를 이어 수익을 창출하는 장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즈음 우리가 마주한 생성형 AI의 폭풍은 저작권의 가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제 AI는 하루면 수만 개의 디자인 시안과 패턴을 쏟아낼 수 있다. 인간 디자이너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낼 결과물을 순식간에 복제하고 변주한다. 이 거대한 데이터의 물결 속에서 무엇이 인간의 창작물이고 무엇이 기계의 산물인지를 가르는 기준선이 바로 저작권이다. 

전 세계 법원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독창적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순수 AI 생성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AI가 시안을 많이 뽑아낼수록, 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인간의 철학으로 골라내고 다듬은 결정적 한 수만이 저작권이라는 법적 보호를 받는다.

세계적인 트렌드 예측가 리 에델쿠르트는 테크노애니미즘(Techno-Animism)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현상을 꿰뚫어 보았다. 그녀는 기술이 투명해질수록 인간은 사물의 물성과 그 안에 깃든 영혼에 집착하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디지털화가 심화될수록 우리는 사물이 가진 촉각적 기억과 영적 가치에 더 목말라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통찰은, 생성형 AI 시대에 왜 인간의 저작권이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AI는 데이터의 평균치를 계산할 뿐이지만, 인간은 그 파편들을 엮어 영혼이 깃든 질감을 직조한다. 수만 개의 AI 시안 중에서 핵심을 포착하여 이를 고유의 저작물로 확정하는 행위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이 창작 주권을 지키는 결정적인 방식이다.

물론 저작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지식재산권 경영의 완성은 특허, 디자인권, 상표권, 그리고 저작권을 촘촘히 엮어내는 포트폴리오 전략에 있다. 창작의 증거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법적 분쟁에 대비하는 증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리더가 마땅히 지불해야 할 전략적 투자다.

글로벌 공룡들의 공습 앞에서도 저작권은 유일한 방패가 된다. 초저가로 무장한 중국의 쉬인(SHEIN)이 전 세계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무단 복제했을 때, 이들을 법정으로 끌어낸 결정적 무기는 특허가 아닌 저작권이었다. 최근 프랑스 법원이 에르메스의 스카프를 업사이클링하여 재킷을 만든 한 브랜드 업체를 저작권 침해로 판결한 사례도 기억해야 한다. 매체(Medium)를 바꾸어도 저작자의 동일성 유지권은 유효하다는 이 판결은, 저작권 주권이 현대 패션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강력한 병기인지를 증명한다. 

귀사의 저작권은 안녕하신가.여전히 매달 날아오는 특허 유지료 청구서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회사의 영혼이 담긴 수만 가지 패턴과 데이터 자산이 저작권이라는 법적 권리로 정착되지 않은 채 공중에 흩어지는 것은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기사원문] [권영설 칼럼 넥스트 스타일] 20년의 기술인가, 70년의 감각인가 - 권영설 편집인 한국섬유신문│202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