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수입'이라는 이름 뒤의 가품 전쟁

  • 작성일 : 2026-04-13 09:22:30

고태용의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이미지=챗GPT
 


최근 패션 시장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흐름 중 하나는 '병행수입'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가품 판매의 확산이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 현상은 이제 오프라인 매장까지 번지며, 소비자뿐 아니라 패션 산업 전반에 혼란을 주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가품 유통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병행수입'이라는 용어를 교묘하게 활용한다. 마치 정식 유통은 아니지만, 또 다른 합법적 경로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소비자 구매를 유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품 여부가 불분명하거나, 명백한 가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긴 채 판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메종 키츠네', '아미', '폴로' 등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들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만든다. 첫째는 소비자의 피해다.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믿고 구매했지만, 실제로는 가품을 구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패션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브랜드의 가치와 경험을 소비하는 영역이다.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소비자는 단순한 금전적 손실 이상의 실망을 겪게 된다.

둘째는 '병행수입'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왜곡이다. 본래 병행수입은 합법적인 유통 방식 중 하나로, 정식 수입이 아닌 경로를 통해 정품을 들여오는 구조를 의미한다. 실제로 이를 업으로 하는 많은 사업자들은 정당한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들마저도 동일한 시선으로 의심받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의 신뢰도가 훼손되고 있다.

나는 한 브랜드를 19년 동안 운영해 왔다. 시간으로만 보면 길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브랜드가 19년을 지속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시즌을 거듭하고, 수많은 선택과 실패를 지나오면서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된 것은 '신뢰'였다.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번의 컬렉션, 한 번의 제품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고객이 그 브랜드를 믿고 다시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신뢰는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 쌓이지 않는다.

지속적인 태도, 일관된 방향,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쌓여야 비로소 만들어진다. 디자이너가 만든 옷 한 벌, 하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브랜드 전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것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 신뢰를 쌓고 그것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점점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브랜드의 가치와 신뢰가, '병행수입'이라는 이름 아래 쉽게 소비되고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는 쌓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에는 단 한 번이면 충분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제재와 관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는 판매자의 신원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고,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쉽지 않다.

오프라인에서도 단속의 사각지대를 활용한 판매가 이루어지며, 소비자는 점점 더 혼란스러운 환경에 놓이고 있다.

이제는 명확한 기준과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시점이다. '병행수입'이라는 용어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가품 판매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패션은 결국 사람과 시간, 그리고 신뢰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신뢰를 지키는 일은, 지금 이 산업에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원문보기] '병행수입'이라는 이름 뒤의 가품 전쟁 - 고태용 기자 어패럴뉴스│2026-04-12